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 (문단 편집) === 부역 행위 === 독일이 벨라루스에서 벌인 일련의 홀로코스트 및 토벌 작전은 현지인의 협조가 필요했다. 특히 홀로코스트의 경우 비유대인과 유대인을 구별할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현지인 부역자들이 더더욱 중요했다. 1941년에 이미 벨라루스인으로 구성된 경찰부대가 창설되었다. 백루테니아 총괄관구[* Generalbezirk Weißruthenien. [[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]]를 구성한 4개 총괄관구 중 하나.]의 현지인 경찰부대는 1941년 12월 3,682명에서 1943년 4월 6,850명으로 증가했다. 1942년에는 벨라루스인 철도수비대도 창설되었다. 1943년 8월까지 보조경찰로 복무한 벨라루스인의 수는 2만에 달했다. 소련군이 벨라루스를 탈환한 후 다수의 벨라루스인 보조경찰들이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. 오늘날에도 벨라루스인 보조경찰의 존재는 민간과 정부를 막론하고 벨라루스 사회의 터부로 남아있다. 독일은 벨라루스인 보조경찰을 채용할 뿐만 아니라 독일에 부역하는 괴뢰국을 설치하려 했다. 그 이유는 1943년부터 [[독소전쟁]]의 전황이 크게 악화되어 현지인의 협조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. 따라서 그 해 라다슬라우 아스트로우스키(Радаслаў Астроўскі, Radasłaŭ Astroŭski)를 대통령으로 한 동방 국가판무관부내의 자치 정부인 [[벨라루스 중앙 라다]]가 수립되었다. 하지만 소련군이 벨라루스를 수복하자 중앙 라다는 나치 독일로 망명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